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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탐방2012

한국 제주도 탐방 (12월 2012)

제주도는 한국의 관광지 1위에 속하고 겨울에도 영상을 유지하는 좋은 날씨로 육지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무비자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동시에 한국의 자치도이다. 남한의 최고봉 한라산을 비롯해 성산일출봉,정방폭포를 위시한 3개의 폭포,목장, 민속마을, 동굴, 50여개 의 골프장 그리고 수많은 박물관이 관광객을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10여편이 넘는 서울에서의 항공편은 물론 완도까지 다리로 연결되어 차와 사람을 동시에 실어나르는 카페리의 2-3시간 승선 시간으로 제주도는 육지와 아주 가까워진 셈이다.

11월 하순 겨울의 입구에 10년만에 제주도를 1주일 방문하게 된 것은 친지의 결혼식 때문 이다. 토요일 새벽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하니 11월 25일 일요일 아침 오전 6시, 40분 거리의 김포공항으로 이동해 제주행 비행기편으로 제주시에 도착하니 상쾌한 기온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라마다인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 시간 까지 수면을 취했다. 3-4시간의 휴식후 호텔 로비에서 오후에 중국에서 도착한 신랑과 신부를 반갑게 만났다. 꽁시,꽁시 이것은 중국어로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이다.

11.26.12(월); 하객들이 속속 도착하는 오늘은 택시를 10만원에 대절해 제주관광에 나섰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북 40Km 동서 70Km인 제주도는 하루에 다 볼 수는 없고 서귀포와 중문 안덕군의 삼방산을 볼 계획으로 산 중턱길 5.16도로 남쪽길로 향했다. 제주시의 날씨는 어제와 달리 갑자기 차거워지고 바람이 심해 내일 계획한 한라산 등산도 연기 해야겠다. 그러나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에 도착하니 산에 가려선지 바람도 잠잠해지고 따뜻한 햇빛이 포근한 날씨로 바뀌어 진다. 맨 먼져 세계에서 유일하게 폭포물이 바다로 떨어진다는 정방폭포를 찾았다. 30여M의 폭포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지는 모습은 수십년전 이곳의 찾았을때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그 동안 내모습은 많이 변했지만..해삼멍게를 파는 해녀들의 모습도 예나 다름없다. 한라산에서 부터 내려오는 물줄기는 일년내내 큰변화가 없다. 서귀포 시내를 가로질러 천지연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가 만들어낸 물이 편안한 호수를 만들고 또 천천히 흘러가는 냇가 주위로 단풍나무가 햇살에 물려 몹씨 아릅답다. 강물위로 놓여있는 돌다리 앞에는 양편에 물긷는 젊은 여인과 나이든 여인의 돌하르방 두개가 양편에 놓여 제주의 정겨움을 더 해준다.

폭포를 지나 10분쯤 이동하니 새들의 고향 새섬(조도)으로 연결된 다리에 도착했다. 서귀포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이 다리는 배의 닷모양으로 만들어 졌는데 이 다리를 지나 새섬을 한바퀴 도는데는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새섬종주는 생략하고 초입에서 사진 몇장찍고 차로 돌아왔다. 항구를 끼고 언덕을 10분쯤 돌아서니 중문단지에 들어선다. 제주도의 해변길은 250Km쯤 되는 데 경치가 아름다워 길을 잘 만들어 하이킹 코스로 만들어 올레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지금 이길이 걷는길로 유명해져 세계적인 하이킹 코스로 점차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3-4일이 걸리는 이 종주 해변길중 8코스에 해당하는 주상절리 해상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입구에는 목선 모형에 세계 유명도시까지의 방향과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로스엔젤리스 까지는 9600Km로 파리 까지의 거리와 유사하다. 용암이 바닷물에 밀려 특이한 형태의 기둥 바위를 이룬 이 해변 지형은 처음부터 알려진 것은 아니고 자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려 점차 관광객이 많아 진 후 정부에서 길도 많들어 개발 해 낸 곳이다. 택시운전수 아저씨는 1000원 만 받으면 좋을 듯한데 3000원 입장료 가치는 없다고 평가절하한다.

공원을 나와 10분쯤 이동하니 올레길 21코스중 가장 아름답다는 외돌개 올레길(9코스)의 초입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대장금 영화 촬영지로도 알려져 짧은 시간 올레길을 걷고 싶으면 모두 이 길을 찾는다고 한다. 입구에는 외로운 듯이 서있는1자형 돌이 주변의 섬들과 어울려 사진 찍기 명소가 된 외돌개 전망대가 나온다. 역광이지만 기술적으로 잘 나온 사진 몇 장찍고 약 2-30분 거리의 9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해변을 따라 하이킹 코스를 잘 만들어 전망과 운동 동시에 즐길 수 있는곳이다. 군데군데 간식도 할 수 있고 약주나 막걸리를 즐길 수도 있다. 외지에서 온듯한 등산복의 관광객도 많이 보인다. 코스가 끝나는 파킹장에 대절 차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운전사의 안내로 고기요리, 해물요리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는 유명식당에 들려 전복해물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천제연 폭포에 들리려 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고 중문단지에는 많은 박물관 이 있는데 다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유리박물관, 성 박물관, 그리스 박물관, 살아있는 박물관, 심지어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까지 있다. 세계의 유명 건축믈 100개 이상을 적게 조각한 미니어처 박물관 등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많은 인위적인 관광 인프라가 제주의 순수성을 잃을가도 걱정이다. 중문단지 를 나와 삼방산으로 향해 달리는데 차창밖으로 귤감나무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진녹색잎에 노란 귤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인부들이 부족해 수확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황금나무가 고생나무가 되었다고하니 관광수입에 밀려 귤농사는 밀리는 사업이 되었다. 바람, 돌, 해녀의 3다도 의 제주에 해녀 또한 없어지고 박물관으로 채워 질 것 같다.

삼방산이 보이는 바닷가로 접어들어 용머루 바위를 관광하기위해 주차장에 섰다. 저녁 해가 벌써 지려고 바닷가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초입에는 화란인이 맨 처음 제주도에 들어와 상거래를 시도한 배의 모형(하멜선)이 전시되어 있고 누워있는 용의 형태를 나타내는 바위주위를 돌아 나왔다. 바람이 많이불고 온도가 내려 가지만 석양의 햇살이 바위와 조화를 이루며 사진찍기에 적당한 날씨와 시간대다. 한가로히 낚시에 빠져 있는 강태공은 지는해와 더불어 카메라에 크로즈업 된다. 40분 정도걸리는 이 해안길은 물이 들어 오는 만조 시간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택시로 돌아와 몸을 녹이는데 벌써 저녁 6시가 넘었다. 제주시로 넘어 오는길에 운전수 아저씨 전화벨이 울리는데 전화기엔 내사랑 이라고 씌어있다. 금슬이 좋은 아저씨 인 것 같다. 호텔에 도착해 8시간 15만원과 팁 1만원을 드리니 반가운 얼굴이다. 택시비가 다른 물가에 비해 싸다.

예정보다 호텔에 늦게 도착해 기다리던 친구부부가 가 버렸다. 전화가 없으니 불편하다. 다시 친구와 연결되어 친구는 나를 데리고 호텔 근처 횟집으로 갔다. 우리는 10여년만에 다시 만나 옛생각에 젖어 기억을 더듬곤했다. Y친구는 오랜동안 하숙을 같이 했는데 중도에 군대를 가서 졸업을 같이 못한 것도 기억이 없었다. 머리를 많이 길러 이발 하라고 돈도 내가 주었다는데 기억이 없다. 학창시절 나는 12시간 목선을 타고 제주에 처음내려 신기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뒷간에 돼지 들이 꿀꿀대고 식사시간엔 밥을 한가운데 놓고 서로 퍼가지고 자기앞에 놓고 먹던 옛날 친구집의 식탁이 생각나며 위엄 있으신 아버님 모습도 떠오른다. 지금도 90세 넘어 살아계신다니 장수집안 이다. 갑자기 친구부인이 식사기도를 하라고 해서 깜짝 놀랬다. 왜냐면 친구는 크리스찬과는 결혼 하지 않겠다는 말이 생각이 나고 내가 요즘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식사기도가 자주 막힌다. 인도 다녀와서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변했다. 친구는 나이든 모습에 조용 한데 친구부인은 예날보다 더 젊어진 얼굴에 활발 해 지셨다. 도미 한마리 횟감을 만들고 매운탕 이 푸짐하게 나와 대접을 잘 받았다. 제주시는 더 젊어지고 우리는 더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11.27.12(화); 오늘은 오랫만에 만난 신랑을 포함 셋이 제주 칸추리크럽에서 골프를 치는날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도 걸른체 제주 칸츄리크럽으로 갔다. 세사람 골프비 30만원 크럽렌탈 15만원 캐디 9만원 18홀의 골프장은 황금길이 되었다. 미국보다 10배가 비싸지만 제주의 골프는 한라산의 착시현상과 맞물려 매력적인 그린이다. 모처럼 만난 세사람은 3-4년전 미국에서 함께 골프치던 옛일을 생각하며 볼을 날렸다. 그땐 총각이었는데 이젠 상항이 달라졌다. 골프가 잘 안맞을 수록 걷는길이 많아져 못치는 사람이 운동량은 제일 많다. 카트는 길을 따라 리모트에 의해 움직이고 캐디는 크럽 골라주고 잃어 버린 볼 찾아주기에 바쁘다. 7시에 시작한 골프는 12시가 넘어 끝났다. 가랑비가 약간 올때도 있었지만 큰 불편 없었고 뒤에 오는 그룹에도 방해나 지장이 없어 다행이다. 호텔로 돌아와 오후 3시 중국에서 신부 부모님 오실시간이 약간 남아 신혼부부와 같이 먹거리 골목에서 유명하다는 김치찌게 식당으로 갔다. 사람들이 밀려있고 30가지를 넣어만든 김치찌게라고 크게 써있다. 중국음식이 다양하다 지만 한국음식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매웁고 뜨거운 국물과 제주 특산 돼지고기로 끓여낸 찌게가 한국 음식의 특수한 맛으로 이방인을 매혹시킨다. 오늘 오후 많은 식구들이 원근 각지에서 도착했다. 처음만나는 식구 10년만에 보는 식구들 반갑게 해후하고 중국에서 온 신부 측 손님들과도 인사하고 뻐스로 늘봄 흑돼지 식당으로 갔다. 제주도 특수돼지는 검은색이 아닌데도 흑돼지라는 별명이 붙어 타지역의 종류와 구별을 한다. 돼지고기는 기름이 많아 적당히 구웠을때가 먹기 좋은데 그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중국에서 오신 손님들 통역과 서로서로 안부를 묻는 화기애애한 시간들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11월 22일(수);

1시 결혼식 시간에 맞춰 오전에는 휴식하고 점심시간에 정장을 차리고 8층 예식장으로 올라갔다. 유명가수가 사회를 보고 축가를 불러줄 M2M 가수 2명도 와 대기하고 있다. 중국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한 신부의 손을 신랑이 잡고 앞에 서면서 예식은 시작되었다. 가족만이 모인 오붓하고 화기애애한 결혼식이다. 화려한 결혼식 문화로 말이 많은데 한국의 본토에서 보면 우리나라지만 조용한 해외에서 각국에 살고있는 형제자매들이 다 뫃였다. 중국 에서는 한가족 한자녀로 자녀들이 귀하다는데 중국이 아닌 신랑의 형제 자매들도 모두 한가족 한자녀다. 부디 신랑은 이 고정된 룰을 깨고 다복한 가정 만들면 좋겠다. 늘신한 몸매의 두가수는 아직은 부족 하지만 지켜봐 달라는 내용의 축가를 정말 은은한 목소리로 부른다. 내 잘난 맛에 산다는 노래에 비하면 부족함을 고백하는 아련한 사랑의 표현이 담긴 노래다.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나 아름답다. 모든허물을, 잘못을, 어려움을, 부족함을 다 감싸 안는 힘이있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신랑 신부의 고백서다. 단군선조부터 오늘이 있기까지 지켜주신 조상님의 은혜와 보살핌으로 먼 타국에서 만난 배우자지만 이미 예정된 우리들의 결합은 굳게 맺어진 사랑의 힘으로 어떤고난도, 힘든 역경도 같이 헤쳐 나갈 것 이란 각오를 부모님과 친지앞에 읽어 나갈때 우리 모두의 눈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랑보다 더 강한것이 무었이랴.두사람의 행복을 빈다.

결혼식후 같은 자리에서 코스식 식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신혼부부의 1급 호텔방에 갔다. 보통방의 3배 정도 넓고 전망좋은 방에 신랑측 친지들이 다 뫃여 와인을 나눠 마시며 재미있게 담소 하고 있는데 신부측 친지 그룹은 아무 연락도 주지않고 방에 남겨놔 실례를 범했다. 곧 면세점으로 모시고 가서 샤핑을 돕고 시간을 만들어 드렸다. 저녁 식사는 탑동 팔도 수산식당에 회정식으로 뫃이게 되어있다. 식당에 들어서자 벌써 상마다 싱싱한 회가 손님들을 기다리고있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라서 해산물을 많이 수출하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신부 부모님께서 가져온 마오타오 유명특주가 몇순배 돌고 나니 식구들 모두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한국말 중국말 섞어져 알아듣는 말만 알아듣는 시간들이 되었다.

식사후 뻐스로 이동해 돔이라는 빠에 도착했다. 이층 계단을 오르니 앞에 무대가 있고 약간 어두운 아래쪽으로 많은 손님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무대에선 간단한 공연과 노래와 춤으로 손님들의 흥을 돋운다. 많은 손님들이 앞에 나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현란한 조명과 음악,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제비들.. 최근 방영된 빛과 그림자의 촬영현장 같다. 몇년만에 경험하는 광란의 도시에 밤 문화인가. 이런 젊음의 시간들이 언젠가 있었는데.. 요란한 음악이 조용한 크라식으로 바뀌면서 우리가 앉아 있는 홀 전체의 지붕이 천천히 열린다. 하늘이 보이며 하얀 인조눈이 하늘로 부터 떨어진다. 별이 풍성한 밤이면 더욱 좋을것을 아쉽다. 다시 지붕이 닫히고 우리 일행은 뻐스로 돌아왔다. 광난의 밤은 맛보기다. 우린 젊지 않으니까..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뻐스로 오르는데 가장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 4명은 뻐스에 타지 않고 남았다. 우린 아직 젊으니까..

젊다고 자처하는 이 문제아들은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홀을 지나 조용한 구석방으로 안내 되었다. 술이 나오고 여자들도 조금 있으면 대령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젊다고 따라 왔지만 사실은 똑같이 샌님 들이다. 술도따라 주는 술을 받아 마시지만 술을 따를려니 처음일이라 손이 떨린다. 건배에 건배를 거듭 하는데 일하는 청년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여자들이 다른 방으로 다 나가 없으니 부킹이라도 하겠냐고 묻는다. 부킹- 이것이 왠 낫선 단어냐.. 한국엔 미국에 없는 영어 단어 도 많다. 청년이 나간뒤 10분쯤 후 벌써 약간 술에 젖어 행동이 자유로워진 여인 2명이 들어왔다. 술 한잔씩 돌리고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한곡조 뽑는다. 여전히 실눈으로 우리들을 탐색 하면서.. 한두잔 술과 한두곡조의 노래를 우리와 나누던 두 여인은 화장실에 간다면서 나가 버린다.

어쩌다 보는 거울의 우리 모습이 이 여인들처럼 나이들어 보일 것 같다. 여인들도 우리의 모습이 자신들 처럼 나이 들어 보였는지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달려온건 90도 각도의 허리- 예의 그 청년- 다른분 찾아 올가요? 계속 부킹?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몇분 후 다른 여인 두명이 비슷한 모습의 비슷한 술기운으로 방에 들어왔다. 술이 돌고 서로 노래를 바꿔 부르고 역시 옆눈으로는 우리를 탐색한다. 보아하니 이 분들은 제주 현지인 들이다. 무슨연유로 여기와서 방을 옮겨가며 모르는 남자와 술과 노래를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알만한 것은 직업여성이 아니면서 대범하게 친구 사냥 을 하고 있는 이들의 현주소가 옛날의 우리들의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이들은 또 화장실을 핑계로 또 떠났다. 떠났기에 망정이지 살림이라도 차리자 했으면 어쩔뻔 했을까, 인생의 역사책에 흥미진진한 연극프로를 제공할 뻔 했다. 아슬아슬 하다 , 모든인생이 그렇듯이.

시간이 많이 된 것 같아 홀을 나오니 밤 12시가 넘었다. 가까운 거리에 국수집에 가서 시원한 국수와 돼지고기 구이를 먹으니 술이 조금은 깬다. 돌아 오는 택시 속에서 이제 우리는 혈기 왕성한 젊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중얼 거렸다. 그래 우린 이삿짐 쌀때는 이사추럭 냉장고 위에 제일 먼져 앉아 있다니깐, 떼놓고 못가게.. 우린 이제 구리 가격 약간 아래야 벌써어..

11월 23일(목);나는 어젯밤 일의 일부분을 입에 잭을 달고 발설하지 않았는데 어느방에서 슬슬 술 이야기부터 여자가 들어왔다 느니, 그리고 점점 춤까지 췄다는.. 끝없는 유언비어가 아침부터 날아 다녔다. 나는 여자를 본일도 없다에서 손도 만져 본 일이 없다까지 어휘 수정을 계속해야했다. 사실 어젯밤 일을 비디오 녹화 했으면 값나가는 보도자료가 될 뻔 했다. 즐거운 상상으로 아침을 마치고 오늘은 단체로 제주도 관광 하는날이다. 뻐스엔 한 여자분이 중국어 통역으로 올라 오셨다. 먼저 내린 곳은 중문의 용암으로 해변층이 특이하게 형성된 주상돌기공원이다. 뻐스에서 내리니 우리도 큰 그룹이다. 형제들, 조카들 ,또는 가족끼리 그룹을 만들어 사진찍기에 바쁘다. 중문해수욕장 까지 내려가 백사장을 거닐다가 장소를 옮겨 천제연 폭포로 갔다. 중문단지안에 있는 이 폭포는 다행히 지난 화요일 우리가 못 봤던 곳이다. 하늘의 옥황상제가 선녀들과 목욕 했다는 이 폭포는 3단계의 폭포로 나눠 지는데 물이 제일 많은 중간부분의 폭포는 20여m가 넘는 폭포 길이 와 아래 물속 깊이가 같아 잠겨진 물 색갈이 진초록색으로 아름답다. 잘 가꾸어진 난간길을 따라 올라가니 1단계 폭포가 비슷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반긴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라 근처 중식집에서 해물 뚝배기요리를 회와 함께 먹었다. 식당이 큰데도 손님 들이 끝없이 밀려온다. 중식후 일행은 박물관은 살아있다라고 써있는 Live Museum에 들렸다. 덴마크에도 코펜하겐 시내에 50개가 넘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이곳도 박물관이 많다. 그런데 이 박물관은 세계에 없는 신기한 것들이 진열되있다. 옛 명화들이 살아있는듯 액자 밖까지 나와있고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명화의 주인공과 대화 하는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타이타닉에서 내가 구출하는 장면이나 베니스에서 곤돌라를 타는 주인공이 된다. 백악관의 대통령도 되보고 거꾸로 건물을 올라가는 사진도 간단히 찍을 수 있다. 카메라와 주인공만 있으면 어떤 사진도 만들수 있는 이 박물관은 요즘 사진을 못찍게 하는 유명 박물관에 비해 관대하다. 박물관을 나와 삼방산 용메루 바위를 보기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기온이 내려가며 추운날씨가 시작된다. 이곳은 우리가 화요일 와 본 곳이기에 기꺼히 길 안내가 가능 하다. 용이 누운 모습을 바닷가를 돌면서 보는데 내 고향 변산반도 채석강과 비슷하다. 30분쯤 돌아 나오니 벌써 해가 기운다. 신제주시로 들어가 첫날 우리가 들려 식사한 워낭 소고기집에서 소고기를 구워 식사를 했다. 내일 2차 관광 날이지만 우리는 한라산 등산 계획으로 단체관광은 오늘뿐 이다. 화요일과 오늘 발전 된 제주도를 다 돌아보면서 수 십년전 처음 제주도 방문을 12시간 배를 타고 와서 보던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11월 24일(금)

겨울 한라산 등산

한라산은 남한에서 제일높은 1950M로 제주도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제주시와 서귀포에서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이다. 평탄하게 보이지만 높은 산이라 700M고지를 관통하는 5.16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1일등산이 어려웠다. 그러나 교통이 좋아지고 일기예보의 기술도 발달해 겨울 날씨에도 한라산 1일 등반 정상 정복이 가능 해졌다. 지난 화요일 등산계획이 비바람으로 연기되어 떠나기 전날 금요일 정상정복의 날로 잡았다. 7시에 아침 호텔식사를 마치고 카운터에서 조그만 지도 한장을 얻어 물과함께 베낭에넣고 택시로 성판악 탐방로를 향해 호텔을 나섰다. 한라산 등반길은 5개의 길이 있는데 정상까지 뚤린 길은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 단 2개다. 택시운전수는 오늘 등반날씨가 최고 라고 하는데 정말 바람도 없고 해도 구름에 가려있다. 40분쯤 달리는 거리에 20,000원을 주고 등산입구에 내리니 벌써 형형색색의 등산객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김밥파는 가게에 들려 점심 2인분을 사는데 얼음길에 대비해서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고 방송이 나온다. 아이젠 파는 가게에 들리니 10,000원짜리와 40,000원 짜리 두가지가 있다. 두켈레 60,000에 사넣고 등산입구를 통과하니 벌써 8시20분이다.

2012 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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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Km거리에 진달레밭까지 12시 도착해야하며 그 이후엔 통제된다. 해가 짧은 겨울 산행이라 안전사고에 대비해 엄격한 규칙이 정해지는것같다. 그곳에서 다시 2.3Km떨어진 백록담엔 1시반안에 도착해야 정상을 보고 바로 하산길을 재촉해야한다. 산길은 잘닦여져 있고 조금 어려운 곳이면 나무로 마루를 만들어 꼭 학교교실 복도를 지나가는 기분이다. 전체 산행길의 거의 50%는 발을 땅에 닿지 않고 올라가는 느낌이다. 이렇게 쉬운 것 같은 등산길이지만 젊은이들에게 자꾸 패스 당하니 나이가 들은것은 확실하다.

1968년쯤 처음 한라산 등반할 때가 생각난다. 30여명의 등산반이 무거운 장비를 지고 1박2일 코스로 한라산에 올랐다. 여름이었으므로 무더웠고 관음사쪽으로 오르는 개미등은 그늘하나 없이 직사광선을 맞으며 힘들게 올랐었다. 어느 대피소에서 야영을 하고 백록담에 오르니 그땐 정말 감개가 무량했다. 그 뒤로 한라산에 매혹되어 혼자서도 오르고 제주도에 올 때마다 한라산을 찾았다. 이번엔 10년만인데 겨울등반은 처음이다. 안내 표지판이 스키장의 코스처럼 컬러풀하게 난이도와 거리등이 표시되어 거의 500m 간격으로 자주 나온다. 등산로 이탈을 막기위해 길밖은 울타리로 막혀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0%, 단지 걱정은 자신의 인내력과 저력 그리고 변화무쌍한 날씨만 받혀주면 된다.

1시간 10분쯤 오니 속밭대피소가 나온다. 화장실이용과 10분쯤 쉬고 바로 출발했다. 겨울 산행이라 물이 많이 필요없다. 겨울 잠바도 바람이 없어 거추장 스럽지만 입고 계속 올라갔다. 물은 0.5리터 2병이면 된다고 했는데 물 적은병 1병과 2리터짜리 1병 총 5병의 양을 넣었으니 무게가 만만치 않다. 방풍복과 우산 까메라까지 다른 등산객들의 짐보다 확실히 많이 지었다. 그러나 요세밑에서 본 전문등산인들 짐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해가 나고 고도가 높아지니 얼음길이 나와 아이젠을 신었다. 약간 무겁지만 얼음에 발이 고정되어 안전하고 미끌어 지지 않는다. 히말라야 가는사람들만 이런 장비를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도 전문인이다. 40분쯤 왔는데 옆길로 사라오름이라는 언덕길이 있다. 입구에서 왕복 40분 거리인데 들려보라고 권하는 생각이 들어 시간도 넉넉해 왼쪽길로 접어 들었다. 천국에 계단길처럼 나무 사다리로 된 언덕길을 10분넘게 오르니 이 높은 산에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사진을 찍고 사라오름 정상까지 가는것은 생략하고 바로 뒤돌아 원래 등산길로 접어 들었다. 사라오름 입구에서 진달레밭까지는 1.5Km 1시간 코스인데 벌써 10시다. 그리고 대피소를 넘은 지점부터 진달레 밭까지는 등산로가 빨간표시로 최고 경사의 난이도로 표시되어있다. 잘못 하다간 진달레 밭에서 통제되어 떨어진 진달레잎 처럼 자존심 상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가장힘든코스인 진달레밭까지 12시 10분전에 도착하니 100여명이넘는 등산객이 그룹으로 앉아 간식이나 나면을 상점에서 구해 먹고있다. 나면 2개를 사면서 12시 통제 한다는데 먹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컵나면 2개에 더운물을 따르고 돈을 지불하고 들고 나오는데 통제소에서 빨리 올라가라고 확성기로 야단을 친다. 나면 2개를 들고 통제소는 통과했는데 먹을 만한 장소가 없다. 더구나 늦게 떠나는 많은 등산객들 때문에 떠밀리다 싶게 올라가는 형편이니..뒤로 처지지만 칼로리는 채우자는 생각에 중도에서 나면을 먹었다. 갑자기 덥고 매운 나면 때문인지 열이 나고 숨이 가쁘다. 늦게 통과한 마지막 그룹 은 벌써 보이지 않게 멀어져 버리고 우리가 제일 마지막이 되었다. 외국인 한명과 여학생이 자기들은 포기 한듯 길에 한가히 쉬고 있다. 과체중의 한 남자 등반객을 유도 하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여학생 그룹도 정상정복은 이미 포기 한 몸짓이다. 정상으로 부터 멀어지고 지쳐버린 사람들 사이로 마지막 열차를 타려는 긴박감으로 계속 올라갔다. 급경사가 많아 숨이 많이 차고 나무들이 점차 작아지며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1차 관문은 통과 했지만 1시간 반 안에 정상까지의 2차 관문이 남아 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외국인과 한국의 인상을 물어 보고 싶었는데 대화 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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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 손에 닿을 듯이 보이는데 많은 등산객이 마지막 남은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고산에서만 자라는 키가 크고 잎이 적은 나무들은 이내 멀어져가고 잔가지의 나무들이 함박 눈을 잔뜩 이고 있는 사이로 멀리 서귀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 시간은 1시를 넘고

위에서는 빨리 올라오라고 야단이다. 곧 통제선을 닫는다는 이야기, 그러면 우리는 고생해서 올라와 정상도 못보고 내려가야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떻게 막차만 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힘을 다해 거의 정상에 다달으니 통제시간 5분 전인데 벌써 내쫒기 시작한다. 백록담을 보며 편하게 않아 점심식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사진은 한장 찍어야지, 통제를 하는 관리인에게 사진한장 부탁하니 서둘러 찍어준다. 눈밭으로 오목하게 들러 쌓인 백록담은 거대한 분화구를 자랑하는듯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백록담 주변을 조금돌아 관음사 쪽 길로 내려 오는 길을 택했다. 이길은 8.7Km로 약간 짧지만 경사도가 만만치 않아 어렵고 제주시를 관망하면서 내려오기 때문에 경치가 좋다. 정상주변에는 눈발이 나무에 걸쳐 경치가 몹씨 아릅답다. 올라올때 벗었던 아이젠을 다시 신고 얼어붇은 등산로를 천천히 내려갔다. 왠지 이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없다. 다 성판악 쪽으로 내려간듯 수를 셀만큼 소수의 사람들이 내려간다. 아마도 전문가 들만 이길을 선택 하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장소에서 김밥을 찬물과 함께 먹는데 시간이 지나선지 맛이 별로 없다. 서둘러 내려오는데 대피소 가 수년전 홍수에 떠내려가 그 장소에 사진 현판만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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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부터 2시간쯤 내려오니 삼각봉 대피소가 나온다. 내리막길인데도 경사가 심해 속도가 나지 않는다. 거꾸로 올라 올때는 이 삼각봉에서 12시 통제를 한다. 난이도 경사를 훈련 하려는 등반객만 이 코스를 이용할 것 같다. 화장실 사용후 바로 하산하는데 내려가는 등산객이 별로 많지 않다. 안내판도 성판악쪽 보다 적고 표시된 등산 시간이 오르는 시간을 감안해서 반으로 접어 계산해보지만 맞지 않는다. 즉 내리막 길이지만 길이 어렵고 지쳐서 빨리 내려 갈 수가 없다.

내가 제주도와 인연을 맺은것은 대학때 제주학생들과 하숙을 같이한 연유다. 여름방학때 목선인 황영호를 타고 목포에서 1시 출발한 배는 비바람속에 12시간을 항해해서 밤1시에 제주시에 닿았다. 마중나온 친구들 그리고 육지와 다른 물과 바람 바위 들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닥아왔다. 곳곳에 열려있는 처음보는 귤감나무는 내가 어느 열대지방에 와 있는 착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제주도 친구들과 짝을 지어 자기들도 처음가보는 시골길을 걸어서 섬을 일주한 기억이 있다. 금령사굴을 갈때는 횃물을 만들어 1 Km나 되는 긴굴을 끝까지 가 보는 경험도 했다. 무전, 무취 그때는 인심도 좋아서 학생이라면 자기 자녀처럼 친절히 먹이고 재워 주었다. 5.16도로가 건설되는때 제주에서 서귀포까지 47Km를 걸어서 횡단하기도했다. 그 후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제주도를 자주 찾았고 이민후에도 고국을 찾을때는 꼭 제주를 찾고 한라산을 올랐다. 한라산은 언제나 편안하게 닦아 오고 고향처럼 내 등정을 반가히 맞아 주는듯했다.

옛생각에 쉽게만 생각했던 한라산 등산은 이번 만은 만만치 않다. 그것은 분명 젊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뙤약볕에 그늘도 없이 오르던 기억이 생생한 개미등을 내려오는 데는 양쪽으로 숲이 무성하고 등산로를 벗어나는 양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가 살짝살짝 보인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개미등을 거쳐 탐라계곡 대피소까지는 몹씨 경사진 길인데 2.8 Km 를 걷는데 1시간 반 이상이 걸렸다. 곧 5시가 되는데 남은길은 평탄한 길 이라지만 3.5Km이상이 남았다. 개미등이 끝나가는 등산로에는 흔들다리와 급경사의 사다리로 등산길을 많이 줄여놓았다. 한라산등산은 쉽게 만들어진 목조다리들이 많아 용이한 장점과 자연을 밟고 지나가지 못하는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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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계곡 목조다리를 지나면서 점차 어두어지기 시작한다. 겨울산행은 하루해가 짧기 때문에 시간배정을 잘 해야 하는데 오늘은 조금 계산착오가 생겼다. 아니 계산은 잘 했으나 통제선에서 경고하는 바람에 조금 무리 해서 올라갔나 보다. 아니면 마시지도 못할 2리터짜리 물을 무겁게 가지고 올랐다 내려오는 실수를 범 한것도 예상치 못 한 일이다. 1.5Km남았는데 완전히 어두어 진다. 다행히 후랫쉬를 가지고 온 것은 잘 한 일이다. 뒤에서 빨리 지나가는 등산객이 어머님, 아버님 어디 다친데는 없는가 물어본다. 내가 언제부터 어머님 아버님호칭을 듣게되었나 놀랍다. 아니 괜찬 수다, 사실 괜찬치 않는데… 10분이면 걷는다는 마지막 1Km는 15분도 넘게 걸렸다. 두번이나 길에 곤두박질 하면서.. 관음사에 6시에 도착하니 완전히 어두어지고 택시 두대가 우리를 기다리는듯 빨강 빈차 싸인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오늘의 구세주다. 호텔까지 얼마입니까 2만원, 그 열배라도 우리는 탈 수밖에 없다. 이로서 한라산등산 10시간의 등반이 종료되는 순간이다. (12/4/2012)

호텔에 도착하니 다행이 우리때문인지 저녁식사 나가기 전이라 한다. 내일 친지들이 떠나니 오늘은 마지막 제주에서의 만찬이다. 전복요리가 일품인 도라지 식당에 들려 처음으로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나눠 앉았다. 그 동안 친해 졌는데 이제는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야하니 아쉽다. 신랑이 이쪽저쪽 통역 하느라 바쁜틈에 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이럴줄 알았으면 중국어 시간에 좀더 열중할 걸 그랬다. 전복 밥에다 생선회 오늘의 술은 제주토종 막걸리다. 건배 하고 또 건배 양가 부모님들은 자식 결혼 시키는일로 몹시 서운하겠다. 그러나 한편 대견하고 흡족한 일이다. 새로운 가족들을 더 얻었으니 반갑고 축복받는 일이다. 오랫만에 만난 친지들도 이제 헤어짐이 아쉬어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11월31일(토); 호텔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친지들의 마중을 받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중국손님들은 새벽에 떠나시고. 퍼즐처럼 다양한 성격의 다양한 형제들이 같이 앉아 다 마쳐보면 깊은 뜻의 한 그림으로 맞춰진다. 뜻깊은 제주도에서의 모임에 참석해 대접받고 신나는 하루하루였다. 새 신랑의 약속처럼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우리도 출발한다. (12/9/2012)